경기도의 3.1운동 이야기 '화성 제암리, 고주리 학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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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3.1운동 이야기 '화성 제암리, 고주리 학살사건'
  • 정명달 기자
  • 승인 2019.02.21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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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만행 기독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커티스, 테일러 일행에 의해 외부에 전해져

일제강점기 시절 모든 독립운동이 그러했듯 3.1운동은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랐다.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일제의 만행들.

그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투사들 외에 일반인을 희생시켰던 많은 사건 중 유독 잔인했던 사건 하나가 바로 화성에 위치한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이다.


당시 화성을 비통함으로 덮었던 참상. 그때 그날의 이야기를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민족의 독립을 갈망했던 그때, 일제의 보복이 가져온 마을의 비극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 전체가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며 벌였던 3.1운동. 화성 지역은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을 파괴하고 일본인 순사 2명을 처단하는 등 격렬한 무력항쟁을 전개했다.

순사부장 노구찌와 일본인 순사 가와바다를 처단한 일에 대한 보복으로 중위 아라타가 지휘하는 보병 11명이 제암리에 들어섰다. 마을에 도착한 후 발안장터에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주민들을 예배당에 모이게 한 뒤 사격을 가했고 예배당과 민가에 불을 질러 23인이 희생됐다.

이웃마을 고주리고 가서 천도교인 김흥렬의 일가족 남자 6명을 칼로 차례차례 목을 베고 난도질하여 참혹하게 죽이고 시신을 노적가리와 함께 불살라버렸다. 일제는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을 비롯해 화성 전역에 걸쳐 방화와 학살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체포와 구금, 갖은 고문을 자행했다.

일제의 만행이 신속하게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기독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커티스, 테일러 일행이 자동차로 수촌리 현장을 확인하러 가던 도중 제암리 참상을 목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밤중쯤 되니께 좌판이 하구 일본 사람 댓 데리구 들어오더니 이렇게 나와 죽은 사람을 죄 창으로 찔러서 그렇게 해유,죽은 사람을. 죽은 거를 거 무슨 죄로 창으로 찔러서 창자가 흐르게 해유.”제암리 학살사건 목격자 전동례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순국선열들의 얼을 기리고 화성 지역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지어졌다. 제암리에서도 조금 한적한 곳에 지어진 이곳은 3.1절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당시 모습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모습,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엔 일본인 관광객도 눈에 띄었는데 진지한 모습으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31운동 기념관
31운동 기념관
기념관에 들어서면 우선 시청각 자료실에서 그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제암리 사건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된 동영상으로 17분간 상영된다. 영상을 보고 난 뒤 기념관을 둘러보는 편이 기념관을 둘러보는데 더 깊은 인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리타 중위가 나가자 뭐라고 세 번 날카로운 구령이 들려왔고 입구에 있던 병사들이 교회당 안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교회당 바닥에 앉아 있던 주민들은 뛰어 오르고 쓰러지고 하는 아수라장을 이루었지만…….”제암리 학살사건 생존자 노경태



제1전시관에는 3.1운동의 전개과정, 독립운동가, 제암리·고주리 학살사건과 사건 이후 후손들의 삶을
고주리 학살사건
고주리 학살사건

“토막 토막 난도질을 한 후 불을 놓아 시체를 구별할 수 없게끔 만들었어. 지금도 그때의 광경을 생각하면 현기증이 나.”고주리 학살사건 목격자 김시열


 23인 순국 합동묘지/서프라이즈뉴스 정명달 기자
23인 순국 합동묘지/서프라이즈뉴스 정명달 기자
제2 전시관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학살사건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나치에 의한 오라두르 쉬르 글란 학살과 일제에 의한 중국 남경대학살 그리고 제암·고주리 사건을 담고 있다.


고주리 사건을 재현한 디오라마가 가장 눈에 띄는데 모형만으로도 그때 그 현장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과 주검이 되어 짚더미 위에 놓여 있는 시신의 모습에 전문 해설사의 해설이 함께하니 조금 더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쉬웠다.

전시관을 모두 둘러본 뒤 밖으로 향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태극기를 따라 올라가면 순국한 23인 선열의 넋을 모신 23인 순국 합동묘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깐 묵념의 시간을 가진 뒤 내려와 23인을 상징하는 조각물 앞에 섰다. ‘自由롭게 저! 하늘을’이라는 이름으로 3.1 독립 만세운동으로 무참히 학살된 순국선열 23명의 넋을 기리고, 자루 독립 의지를 계승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크고 작은 돌기둥은 순국 선열들의 혼을 담은 추모비이며 높이 솟은 기둥은 무한한 반전과 자유를, 기둥의 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미래 세계를 상징한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탑/서프라이즈뉴스 정명달 기자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탑/서프라이즈뉴스 정명달 기자

3.1운동순국기념탑으로 향했다. 3.1운동 순국기념탑은 불에 타 사라진 제암리 예배당터에 공원과 함께 세워져 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던 그 장소에 잠시 서 한참을 바라봤던 것 같다. 이후 공원의 가장 끝에 자리한 스코필드 박사 동상을 마지막으로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탐방은 끝이났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 안다고 생각했던 사건이었지만 그 기록을 간직한 곳에서 직접 듣고 보고 느끼자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화성에 자리한 많은 3.1운동지와 함께 언젠가 다시 한번 이곳을 방문하자는 다짐을 끝으로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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